안녕 공주! 단발이야. 2024년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네. 공주는 연말 잘 마무리하고 있어?
벌써 2024년이 다 지나가다니. 공주는 올해 어떻게 보냈어? 나는 2024년 온전히 '일'로 가득한 한해를 보낸 것 같아. 정말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혹은 일에 대한 고민으로 채웠지. 그래서 올해는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 같아. 그만큼 몰입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그런지, 삶에서 일이 빠진 지금의 내 상황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아.
'나 번아웃이었나봐...'
이제 퇴사를 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 중인데, 생각보다 무기력이 쉬이 떨쳐지지 않고 있어. 분명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만 두는 순간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더라. 좋아하던 그림도, 사람들과의 소통도 다 덧없이 느껴지는 것 있지. 그만큼 내가 많이 지쳤던걸까?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다보니 작게 시작하기도 쉽지 않는 것 같아.
어제까지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오늘은 눈 뜨자마자 씻고 집 청소를 했어. 미뤄왔던 정리를 하나 둘 해치우면서 점점 깨끗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꽤 가벼워지더라고. 매일 오늘만 같이 에너지가 있음 얼마나 좋을까! 매일이 복불복인 것 같아. 아휴.
최근에 지인 분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했어. 일을 하지 않으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긴다고. 근데 이게 참 웃긴게 일을 하지 않는 나에게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거든. 오히려 주변에서 나를 봐온 분들은 열심히 일을 했으니 조금 쉬어가라고, 고생했다, 당분간은 하고 싶은 걸 해라, 그런 응원들을 더 많이 해 주는 걸.
근데 마음이 그렇지 않은거야. 또 나는 혼자 사는 게 아니다보니,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쉬고 있는 내 모습과 대비 되어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 당분간 하고 싶은 거 해도 괜찮다고 해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는 게 그냥 다 스트레스더라고.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왜 내가 이렇게 불편해 하는가. 주변에서 다 괜찮다는데 왜 자꾸 나를 갉아 먹을까? 왜 쉬지 못하지? 조금 마음을 가볍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최근 지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 고민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찾았어. 나는 내가 그래도 나답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막상 이런 저런 고민들을 이야기 해보니, 내 불편함의 대다수는 사회적인 잣대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달았어.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일을 하지 않아 생긴 죄책감이 누굴 향해 있는 건지 좀 더 생각해해봤어. 나태한 나에게? 고생하고 있는 남편에게? 걱정할 가족과 지인에게? 나는 누구에게 미안한 걸까?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에게' 미안한게 아니었어.
그저 '돈을 벌지 않는 나,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나는 쓸모 없어' 내 생각에 사로잡힌거야. 어른이라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경제적 자립을 통해 가족들에게 떳떳해야 해. 열심히 일을 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으며 멋지게 살아야 해. 결혼을 했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독립적인 힘이 있어야 해. 등등..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래야 해' 하는 고정관념들이 현재의 나를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어.
그리고 내 주변에도 모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하루에 충실한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 그러니까 나는 내가 좀 이상해 보였나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주변 소음을 더 차단할 필요가 있겠다, 내 목소리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요즘 나는 핸드폰의 모든 알람을 끄고 살고 있어. - 너무 웃기게도 일을 그만뒀는데도 무언가 잊은 건 아닌지 마음이 계속 불안했었거든)
사람들은 다름을 두려워 하잖아. 불확실하고 눈에 띄거든. 그래서 내가 어떤 집단에 있는지, 내 주변이 어떤지에 따라 삶의 방식과 사고도 달라지는 것 같아. 그간 나는 어릴 적부터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었거든. 그러니 내 기준보다 사회적인 기준, 평범의 기준에 많이 갇혀있는 편이야.
이 기준을 깨려면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거나, 다양한 사람들의 콘텐츠를 많이 접하면서 스스로 맞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나름 생각이 깨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직도 고정관념과 편견이 왕 많아서 앞으로도 인생 살아가며 배울 게 참 많겠다 싶어.)
하지만..! 무기력은 또 다른 부류라, 요즘은 어떻게 하면 이 무기력을 깰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 그래서 내년에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비행기를 예약해볼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 자꾸 뭔가 지금 이 휴식기를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부담스러워서 잘 못 움직이는 것 같더라고. (원대한 계획을 짜야할 것만 같은)
공주에게 2024년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어떤 한해였어? 나에게 2024년은 '성장통' 같은 한 해였어. 일과 삶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 열심히 달린 만큼 후회는 별로 남지 않은 한 해였어. (뭐 후회해봤자 달라질 것도 없고!)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어찌됐든 재미있게 살고 있었음 좋겠다.)
얼른 기력 회복해서!!!! 다시 힘차고 즐겁게 살아가는 단발이 되어볼게 >___<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공주들에게 내 이야기들이 힘이 되길 바라며, 그럼 다음 주에 봐💕
(P.S. 답장 남겨준 호짱 고마워>___<)
+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야. 오늘 뉴스에서 항공기 사고 소식을 듣고, 삶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더라. 기사를 보는데 한동안 머리가 멍했어. 믿기지가 않더라. 유가족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너무 안좋았어.
나의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모두 평안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