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암이라네. 월요일에 뼈 전이 검사하고 결과에 따라 수술할건지 약물 치료할 건지 결정된대"
최근에 배뇨통으로 아빠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악성으로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어. 추가 검사를 받아봐야 하지만 3기정도 된 것 같다고 해. 머리가 멍하더라. 간호사를 하면서 암 치료 받는 사람들을 워낙 많이 보기도 했고, 언젠간 나의 가족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믿기지가 않았어.
'괜찮아. 그래도 예후가 좋은 암이잖아. 아빠는 잘 이겨낼거야'
덤덤하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이 커지더라.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게 없는데 몸 속에서 그 나쁜 것이 자라고 있다는게, 그리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과 싸워나가야 하는게.. 가족들이 워낙 불안해해서 앞에서는 씩씩하게 이야기 했지만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나도 점점 가라앉는거야. 이럴 때 일수록 불안에 먹히지 않도록 평상시처럼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들과 약속도 잡고, 해야할 일에 집중했어. 그래도 뭔가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하고.. 누가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먹먹한 기분은 변함이 없더라.
처음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 불안해하고 슬퍼하지 말자. 이럴 때일 수록 힘을 내자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가족이 아픈데 슬픈 게 당연하지. 슬픔을 인정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괜찮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으려고. 슬퍼는 하되 불안에 너무 빠지지 않기로.
내일 전이 여부를 듣는 날이야.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한데, 한편으로는 이 시기를 잘 이겨내면 우리 가족이 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 아빠랑 그렇게 친하지 않은 편이라 결혼하고 나서는 연락도 뜸하고 했었는데.. 내가 진즉 건강검진 끌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후회도 있지만 뭐 어쩌겠어. 앞으로 잘 해야지.
번아웃 시기를 겪고 이겨내는 시기를 겪으면서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배움을 정말 크게 얻었거든. 돌이켜 보면 간호사를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때부터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아. 건강한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구든 아플 수 있고, 죽으면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건강 외에 내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 같아. 건강하게 두발을 딛고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가족이 건강하게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런 시기에 아빠의 암 소식까지 들으니 이정도면 하늘이 뭔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어. 내가 쉬는 시기에 소식을 들어 같이 병원도 갈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고...ㅎㅎ 무튼 결과가 어떻든 너무 무너지지 말고 씩씩하게 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