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병 소식을 듣고 한국을 잠시 떠나기로 한 계획을 미루게 되었어. 다행히 전이는 없었고,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큰 병원에서 수술도 빠르게 잡아 이번 달에 수술을 하게 되었어. 마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내 삶 자체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더라.
이제는 진짜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데, 기껏 불편한 마음을 이겨내고 용기를 낸 결심이 뭔가 수포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가족이 아프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속이 상했던 것 같아. 근데 또 속이 상한 내가 스스로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어.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해외로 나가보기로 한 것처럼, 일상을 바꿀 무언가가 필요했어. 그럼 난 뭘 하고 싶은걸까? ... 일이 하고 싶다. 날 위한 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을 참 좋아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보니 나를 위해 일을 열심히 한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백수 기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고. 근데 이렇게 일을 하지 않는 시기를 보내고 나니, 내가 일을 좋아했던 이유가 단순 타인의 인정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일을 하며 무언가에 몰입하고 스스로 성취를 만들어내는 나를 사랑한 것 같아. 백수 기간을 보내며 그런 게 별로 없다보니 삶이 좀 무료하게 느껴지더라.
일을 쉬는 기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정체된 느낌이 들어 불안하다'라고 말하잖아. 근데 내가 지금의 시기를 돌아보며 느낀 건, 나에게 정체된 느낌이 '남들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 나는'이라기 보단 '나도 무언가에 다시 몰입하고 싶다'의 마음으로부터 온 것 같았어.
사실 그 생각은 일을 그만두고 2~3달 쉬고 나서부터 다시 들었다..? 근데 몸이 충분히 쉬지 못한 탓인지 몰입하는 힘이 부족했거든.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이전만큼의 퍼포먼스가 나지 않는,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억지로라도 쉬려고 노력했지. 근데 마음은 잘 쉬고 있지 않더라. 무의식 중에 알았던거야.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걸.
근데 이젠,,, 지갑 사정이 녹록치 않게 되었다는 ^오^ 그러다보니 진짜 이젠 죽이되든 밥이 되는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느꼈지. 올해 1년은 쉬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지만, 이제 슬슬 내년을 대비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그래서 거창한 목표와 포부 없이, '몰입의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취미로 하고 있던 모루 인형을 브랜드로 만들어보기로 다짐했지. 그렇게 내가 1년 넘게 매니저 일을 했던 하이아웃풋클럽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 달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
[ 9월 한 달 간 했던 경험 ]
1. 팔로워(공쥬)들이랑 낭만 여행 - 핸드폰 없는 낯선 여행
2. 모루인형 클래스 열어보기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어)
4. 모루인형으로 플리마켓 나가보기 - 2회
(한 번은 알바생 공쥬랑 함께 나감 ><)
5. 새로운 경험 - 하이아웃풋클럽 운동회, 아이스 하키 벙개
이런 멘땅에 헤딩하는 과정을 통해, 취미로 시작한 모루인형으로 한 달간 목표로 했던 100만원도 벌어보고, 새로운 경험도 잔뜩하며 영감도 얻고 전 달 대비 꽤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아.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고민이 많이 없어지더라 ㅎㅎㅎㅎ 내가 고민이 많았던 이유는 그냥 고민 할 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원래 혼자두면 걱정 근심으로 땅굴 파는 스타일)
물론 일을 쉬는 시간이 있었다보니 초반에는 생각하는 힘이 너무 약해져서, 일 하는 속도가 늦긴 하더라구.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씩 무언가 해내려고 하는 내 모습 자체가 예뻐보이는 것 같아.
몇 달 전만 해도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숨이 막히고, 시작하면 잘해내야 하는 압박에 금세 도망치게 되고, 이전처럼 퍼포먼스가 나지 않아 과정이 괴로웠던 내가 과정을 즐기고 다시 일에 대한 즐거움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더라고.
어제 다녀온 료님의 북토크에서 번아웃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왔는데, 료님이 이런 말을 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