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적어볼까 하다가, 백수 기간 통 틀어서 가장 큰 관심사인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공주의 자존감은 안녕해? 나는 사실 백수 기간을 보내며 자존감이 거의 롤러코스터 급으로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
일을 그만두고 경제 활동이 느슨해진지 벌써 일년이 다 되었는데. 그 기간을 돌아보면 무언가를 하지 않은 건 아닌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한 마음이 올라오더라고. 나를 찾겠다는 핑계로 허튼 곳에 돈만 쓰고 있는 것 같고,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러다가 또 나를 찾기 위해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걸 떠올리며 흩어진 자존감 끌어모으기를 반복했지.
일을 그만 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자. 나는 일을 꽤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간호사 때는 힘들긴 했지만 일 잘한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려고 꽤 노력을 했었고, 간호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겠다고 다짐한 이래로 회사 + N잡의 삶을 살며 열심히 살았고, 퇴사 이후에는 성장에 목 마른 워커홀릭 프리랜서로, 커뮤니티 매니저였을 때는 주말도 없이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어. 당연히 건강도 가족도 소홀해지면서 삶의 여러 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일을 하려고 했을까? 그때 당시에는 일을 열심히 하는 내 모습, 성과를 내는 내 모습,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내 모습, 목표를 달성한 내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아. 뿌듯한 경험을 많이 하면서 이전보다 자신감에 차 있곤 했고, 뭔가 내 세상이 바뀌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갔지.
근데 문제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였어. 회사에서 실수를 하거나,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얻지 못했을 때 내가 너무 창피했었어.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해? 사람들을 실망시킬거야? 못난 모습 보이지 마. 그렇게 나를 다그치면서 괴로워했던 것 같아. 물론 다들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지. 근데 나는 '다음부터 이런 실수를 하지 말자.' 이런 마인드가 아니라, '다음부터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자'의 마인드였었거든. 나를 위해 모든 것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중독되어 있던 거야.
그때 당시에는 인스타툰을 열심히 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나를 꾸민 것 같아.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 열정이 꺼지지 않는 사람. 사람들을 좋아하고 유쾌한 사람. 물론 내 성격 상 이런 면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언제나 에너지 넘친 모습만 있겠어. 나는 생각보다 찌질하고, 어린애처럼 배려가 없을 때가 있고, 감정에 못 이겨 휘청거릴 때도 많거든. 근데 그 모습을 모두 숨기고 사람들이 나를 좋게 바라봐 주기만을 바란거지.
그래서 탈이 난 것 같아. 분명 처음에 인스타툰을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는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고, 인스타툰에는 나의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져 있었거든. 근데 어느순간 갈피를 잃은 듯한 느낌이었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지?'로 바뀐거야.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내적 동기가 타인에게 있으면, 나를 평가하는 것도 결국 타인이 되더라.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쉽게 위축되고 진짜 나를 숨기게 돼. 나는 성격 상 거짓말을 잘 못하고, 좋고 싫음이 얼굴에 티가 정말 크게 나는 사람인데 그걸 막으며 살려니 병이 난거야.
그래서 일을 쉬면서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찾는 시간을 갖고 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드리기 위해서. 찌질하고 조금은 못나도 그게 나인 걸 어쩌겠어. 보듬어 주고 사랑해 주면서 잘 키워봐야지. 돈을 잘 벌어야지만, 일에서 성과가 제대로 나야지만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너무 슬프잖아.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하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거든. 근데 이젠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나의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어.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 당장 결과가 없더라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내 삶에 있어서 가치있고, 일년 간 너는 많이 성장했다고. 남편이 나를 지지해줘도 이렇게 힘이 되는데, 내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 그렇게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시간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지 않을 수록 내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정말 어렵거든. 최근 꾸준히 쓰던 모닝페이지를 잘 쓰지 않게 되었는데,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복잡해지니 그걸 마주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나를 이해하는 연습도 꾸준히, 루틴처럼 해야 조금씩 익숙해 지더라.
원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냥일이 많아 힘들어서 쉬고 싶어 그만둔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랜 기간 나의 마음을 지켜보니, 이 문제의 원인은 나의 마음 속에 있더라. 그걸 발견하는 것도 정말 오래 걸렸어. 발견하는 것만 1년이 걸린 거야. 사실 뭘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나는 새로운 툴을 배우거나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요즘은 내 진짜 마음을 알고 나를 이해하는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느껴. 진짜 이걸 일 다니면서 어떻게 해 ;; 휴 . 그만두고 하길 참 잘했다 ( 합리화 )
나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이것 저것 경험하고 익혀가는 단계라 뚜렷히 말해 줄 수는 없지만 ( 잘 모르겠단 이야기 ) 무언가를 경험했을 때 내 생각을 적는 연습을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되더라. 글을 잘 쓸 필요는 없어. 그냥 내면의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파고 파서 깨닫는 글쓰기를 해보는 거지. - 내 레터만 봐도.. 문체가 수려하진 않잖늬..? 맨날 주절 주절이 반. 공주도 할 수 있어..
무튼 느릿느릿 만사가 귀찮은 요즘이지만 이런 와중에도 무언가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퇴사하고 효율 따지는 거에 질려서 굼벵이 마냥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은 것 같네. 내가 어떻게 사느냐는 그냥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 같아. ㅎ.. 나만 만족하면 된다눙. 쉴 때 내 마음이 불편한 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하고 있어서 그런건지, 혹은 나는 좋은데 사회적인 프레셔 (=사회적 가스라이팅) 때문에 마음 편히 못 쉬고 있는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 생각보다 사회적 영향을 정말 많이 받더라. |